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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소서', 진짜 솔직하게 써봤다
1번, 당사에 지원한 이유와 입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시오
'취준생'들 대변해 이 자소서를 씁니다. 왜 하필 귀사에 와서 이러느냐 물으실 수 있겠습니다. 기사 마감 날짜와 맞아 그렇지, 악의(惡意)는 없습니다.
많은 기업들이 지원 이유를 묻습니다. '그만 좀 물었으면 좋겠다' 합니다.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겠습니까. 돈 벌려고 가는 겁니다. 자본주의 사회 아닙니까. 잘 살려면 돈이 필요합니다. 더 얘기해볼까요. 빚져서 다닌 대학 등록금 갚아야 해서, 빠듯한 월세 잘 내고 싶어서, 취준하느라 쓴 돈도 많아서, 생활비 좀 여유 있게 쓰고 싶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해야해서, 애도 낳고 키워야 해서.
또 귀사는 꽤 이름난 '대기업'이지요. 그래서 지원한 것도 큽니다. 솔직한 얘깁니다. 더 많이 받고 싶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지켜졌음 하고, 회사 오래 안 망했음 싶고, 복지 좋았음 싶고, 다 같은 마음일 겁니다. 그런데 왜 중소·중견기업 안 가냐, 대기업만 보냐, 눈높이 안 낮추냐고 합니다. 역으로 생각하는 게 빠를 겁니다. 과연 '오고 싶은 회사'인지.
귀사는 한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보니 총 만족도 5점 만점에 3.4점이더군요. 기업추천율 66%, 평균 연봉은 4419만원이었습니다. 물론 신입 연봉은 아니겠지만, 괜찮은 편입니다. '퇴근 늦다'는 평이 있던데 좀 걱정되긴 합니다. 특히 저 같은 요즘 젊은 세대들은 '칼퇴근' 정말 중요할 겁니다.
입사 위해 노력 많이 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노오력' 입니다. 1학년 때부터요. 학점 기본, 어학 기본, 연수 기본, 봉사·동아리 기본, 인턴 기본, 공모전 기본, 이젠 여행도 기본. 다들 기본은 하니까, 노력해도 '광탈' 입니다. 자책과 자조 끝에 이런 결론이 납니다. 더 큰 '노오력'을 안해서 그렇다고. 쌀쌀해진 가을 바람에 한숨만 늡니다.
자소서를 '자소설'로 만드는 것도 노오력이겠지요. 눈길 안 끌면 휙 넘기시겠지요. 그래도 쉽게 생각하진 않았음 합니다. 인생 쓰려도 밝게 웃어 증명사진 찍고, 경력 한 줄 쓰려 밤 지샜을 겁니다. 그게 이 한 장의 무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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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 지원한 직군에서 구체적으로 하고 싶은 일과 본인이 그 일을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차별화된 능력과 경험을 기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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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난감합니다. 귀사에서 일해본 게 아닌데, 뭘 하겠느냐 묻다니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입사하면 뭘 이룰 수 있을지.
귀사는 그래도 채용 홈페이지에 소개를 해놨더군요. 직무가 뭔지, 하루 일과가 어떤지, 회사 비전이 뭔지. 그래도 부족합니다. 어려운 말들이고, 그림이 안 그려집니다.
잘 모르니 뭐라도 해야할 겁니다. 채용 설명회를 가든, 귀사 직원을 붙잡고 열심히 물어보든, 검색을 하든. 귀사만 집중하면 시간을 쏟고 할 수 있는 일이긴 합니다.
처음엔 그게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근데 그래도 서류에 줄줄이 떨어졌습니다. '지원자 역량은 훌륭하지만…'을 하루에도 몇 번씩 봤습니다. 열심히 찾아쓴 입사 후 포부가 '김칫국 마시기'가 되더군요. 자괴감이 밀려왔습니다. 한 군데라도 더 써야지, 이렇게 됐습니다. 수십곳, 많게는 100곳 이상도요. 한 군데는 더 붙겠지, 이런 심정으로요.
그럼에도 이 또한 '열정'에 들어가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붙여주면 열심히 하겠다'가 솔직하고 절박한 마음인데, 그러면 '열정이 없구나' 하겠지요. 그리고 '노오력' 부족으로 떨어질 겁니다.
그리고 차별화 된 능력 말입니까. 귀사 '인재상'을 볼 시간이네요. 요약하니 '고객을 생각하고 창의적인 도전을 좋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이고 자기 일에 긍지를 갖고 열정적으로 일하며 바른 길을 지향하고 타인 입장에서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알며 회사와 발전하는 인재'네요.
사실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고객은 별 관심 없고, 그리 창의적인지도 모르겠고, 도전은 남들 하는 것만큼 하고, 일은 퇴근할 때까지만, 가끔 바르지 않기도 하고, 이기적일 때도 많고, 회사보단 개인 중심적이거든요. 근데 이렇게 쓰면 떨어지겠지요.
그러면 '자소설'을 써야지요. 모기 눈물만한 창의성을 스티브 잡스만큼 부풀리고, 월급 만큼만 일하는 열정을 회사 시가총액을 2배로 늘릴만큼 불리는 겁니다.
근데 그것도 쉽지 않아요. 마른 수건 쥐어짜는 심정으로, 밤을 꼬박 새기도 합니다. 분명 열심히 살았는데, 뭐가 잘못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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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번, 학업 외 가장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몰입하여 성과를 창출했거나 목표를 달성한 경험을 기술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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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업도 그리 열정적이지 않았기에, 말문이 턱 막힙니다.
대학생이 뭐 그리 큰 도전이 있었을까요. 한라산 백록담에 걸어 올라가 물을 떠서, 다시 백두산 천지에 걸어 올라 "통일"을 외치며 부어야 할까요. 아니면 청년 창업을 해 구슬땀 도전 끝에 대박을 내야 할까요.
그냥 대부분 성실하고 평범한 대학생·취준생입니다. '성과 창출', '목표 달성'을 1000자씩 쓸만한 게 없습니다. 때론 동기, 선·후배들과 술 마시고, 강의를 듣다 시험 땐 벼락치기도 하고, 방학 땐 나름 스펙을 쌓고, 군대 다녀오고 이래저래 3, 4학년이 되고 '취업'이란 단어에 치이게 된.
가장 도전적으로 몰입하는 게 지금 순간인듯 합니다. 막막한 '취업 준비' 말입니다.
푸념해도 '어떻게든 되겠지' 했는데, 헛물 켜고나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서류 탈락, 서류 넘으면 직무적성 탈락, 면접 탈락, 다시 원점. 눈을 낮추고, 또 낮추고.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고. 점점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누구 합격했단 소리에 축하보단 속이 더 쓰리고. 괜히 서점가면 공무원 시험 서적을 들었다 놨다하고. 어렸을 땐 아버지 보며 '난 회사원 안해' 했었는데, 못하는 거였습니다. 평범한 삶을 사는 게, 왜 이리 힘들까요.
생각해보면 열정적이지 않은 적도 없었습니다. 초·중·고 때 공부도 잘했고, 대학도 좋은 곳 왔고, 늘 경쟁이었고, 몰입해 나름대로 이겨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껏 걸어온 길이 '탈락' 앞에 보잘 것 없이 느껴집니다.
매일매일 무너지고, 그럼에도 매순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게 제 인생에선 가장 큰 도전입니다. 성과는 '합격'인데, 아직 창출 못했습니다. 목표도 '합격'인데, 아직 달성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항목에 쓰는 이유는, 그게 대부분 취준생들 현실이고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용기를 내 정직하게 자소서에 털어 놨습니다. 귀사도 정직하십시오. 이거 다 읽어봅니까? 몇 분이나 씁니까? 스펙으로 거르진 않나요? 인재상 정말 그거 맞나요? 아니면 솔직해집시다. 피차 시간 아끼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