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에 ‘울산 고래고기 환부사건’이 있었다.

불법포획으로 의심되는 시가 40억원어치의 고래고기를 경찰이 압수했다.

그런데 경찰이 압수한 고래고기를 검찰이 피의자에게 돌려주는 일이 발생했다.

검찰은 왜 그런 황당한 처리를 한 것일까?

경북 울진군 북면 울진원전 해상에서 잡힌 밍크고래가 수협 위판장에서 경매되는 모습.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7년 4월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한 고래고기 식당 창고를 덮쳤다.

밍크고래를 불법포획한 후 식당에서 판매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 내사를 벌인 결과였다.

예상대로 냉동창고에는 고래고기 수십 상자가 쌓여 있었다. 시가 2억원 상당 분량이었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조폭(조직폭력배)이 연계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식당 주인은 울산지역에서 ‘계보 없는(경찰 자체 DB 에 명단이 없는)’ 조폭으로 활동하며 불법 고래고기 유통에 관여하고 있었다.

경찰은 관련자들을 구속하고 이날 창고에서 발견한 고래고기 전량을 압수했다.

그런데 담당검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압수한 고래고기를 공매처분하라는 수사지휘였다.

공매처분하라는 지시는 DNA 등록절차도 밟지 않은 불법포획 고래를 시중에 유통시키라는 것과 같았다. 경찰은 거부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장생포 고래연구소 소속 연구원 A씨도 거들었다.

A씨는 “지금 환부해 공매처분을 해버리고 나면 나중에 고래고기 시장질서가 어지러워질 수 있다”고 직접 검찰에 설명했다.

그런데 몇 달 뒤 이상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광수대가 검거한 식당주인과 거래하던 선단쪽 사람들로부터 “더 ‘큰 손’은 따로 있는데 왜 경찰은 ‘잔챙이’만 잡느냐”는 것이었다.

경찰이 이상한 소문의 실체를 파악한 것은 2017년 8월.

울산지검으로부터 “광수대가 압류한 고래고기 전량을 앞서 중부서에서 압류한 고래고기와 함께 폐기하라”는 수사지휘가 내려온 시점이었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앞서 2016년 4월 대규모의 고래고기를 압수한 적이 있었다.

냉동창고에는 당시 중부서가 압수한 27톤 분량의 고래고기 수백 상자가 보관돼 있어야 했다.

그런데 냉동창고에는 아주 소량의 고래고기만 남아있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울산 중부경찰서는 2016년 초 장생포항 일대에서 유통업을 하는 이모씨가 불법포획한 고래를 대규모로 팔아넘기고 다닌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불법 포획된 고래고기는 이씨의 부친 집 옆에 지은 사설 냉동창고에 보관한다는 사실까지 파악했다.

경찰은 불법포획한 고래 해체작업을 하고 있는 현장을 급습했다. 그곳에는 이씨도 있었다.

경찰은 일명 ‘해체조’ 6명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창고 내에 보관 중이던 불법 고래고기 27톤(40마리)을 압수했다.

시가 40억원에 달하는 양이었다.

그 사이 이씨는 경찰의 눈을 피해 달아났다가 며칠 뒤 변호사를 대동하고 경찰에 자수했다. 이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불구속상태로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해경 간부가 불법조업에 관여한 사실도 적발했다.

중부서는 총책 조모씨(55)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약 500만원 상당의 뇌물과 향응을 제공받는 대가로 밍크고래 포획·유통 편의를 제공한 혐의로 해경 간부 김모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울산지역 고래고기 유통 큰손 이모씨

시가 40억원에 달하는 불법 고래 포획·유통업자를 일망타진하는 일은 당시 경찰로서도 큰 사건이었다.

중부경찰서는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를 이어나가면서 압수한 고래고기 27톤 분량에 대한 DNA 검사를 고래연구소에 의뢰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한 달 뒤인 5월 3일 울산지검 황모 검사 쪽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이 압수한 고래고기를 피의자 신분인 이씨에게 돌려주라는 수사지휘였다.

중부서 담당경찰관은 거부했다.

압수물에 대한 DNA 검사도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피의자에게 증거자료를 돌려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담당 경찰은 검찰 직원에게 “저희는 못 내줍니다. ( DNA ) 검사결과도 안 나왔습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은 황 검사로부터 이후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황 검사는 경찰을 설득하는 대신 고래 유통업자 이씨의 변호사 한모씨 사무실에 팩스로 ‘환부지휘서’를 송부했다.

한 변호사는 울산지검에 재직했던 전관 변호사였다.

검찰이 환부지휘서를 변호사 사무실에 보내는 일은 없었다.

통상 고래고기 환부절차는 검사의 환부지휘서를 받은 경찰 수사관이나 검찰 수사관 입회 하에 지정된 고기만 찾아갈 수 있도록 돼 있다.

그것도 DNA 검사가 완료된 이후에나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검찰은 버젓이 변호사 한씨의 사무실로 팩스를 보내 경찰이 압류한 고래고기를 직접 찾아가도 된다는 지휘서를 보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한 변호사로부터 환부지휘서를 넘겨받은 이씨는 수협 보관창고를 찾아가 “여기 환부지휘서를 갖고 왔으니 내 고래고기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창고 관리인으로서도 황당한 일이었다.

관리인은 울산지검에 직접 전화를 걸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경찰 없이는 고래고기를 내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수협 창고로 또다시 한 장의 팩스가 들어왔다.

이씨가 들고간 것과 동일한 ‘환부지휘서’였다.

그렇게 이씨는 경찰도 모르게 수협 창고에 보관된 고래고기 27톤 분량 가운데 21톤을 가져갔다.

장생포항 일대에서는 이씨가 좋은 고기만 골라서 가져왔다는 소문도 돌았다.

DNA 검사 결과는 이씨가 고기를 가져간 지 7개월여 만인 2016년 12월 22일 나왔다.

의뢰한 고래고기 샘플 47점 중 34점은 기존에 보관된 DNA 와 일치하지 않아 불법 개체로 추정되고, 13점은 판정 불능이라는 결과였다.

경찰이 압수한 고래고기는 기존 절차대로라면 단 한 점도 이씨에게 돌아가서는 안 되는 고기였다.

<주간경향>은 지난 14일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한 고래고기 식당 주인을 만났다.

“경찰이 단속을 나오면 합법적으로 산 고래고기까지 전부 다 압수해 갑니다. 압수한 고래고기는 DNA 검사를 거쳐 합법·불법 여부를 따진 뒤 환부조치가 이뤄지는데 대부분 못 돌려받는다고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경우에 따라 DNA 대조작업에만 1년 넘게 걸리는데 그러면 그 고기는 돌려받아도 손님상에 못 내놓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단속에 걸리면 ‘손해봤다’고 생각하지 돌려받는 것은 생각도 못 합니다. 그런데 이씨는 그 많은 고래고기를 거의 다 돌려받았다는 소문이 들렸습니다. 암암리에 불법 고래를 거래하다 (고래고기를) 뺏겨온 사람들 입장에서는 분통이 터졌지요.”

또 다른 가게 주인은 이씨가 평소 자신의 뒷배를 자랑하고 다녔다는 말도 전했다.

“내가 여기서 수십 년을 고래고기를 팔면서 장사를 했습니다. 이씨는 여기 장사하는 사람들이 빤히 다 압니다. 여기 OO 식당 여사장이랑 동업을 했었는데 평소에도 그렇게 허세를 부리고 다녔습니다. ‘나는 불법 고래를 들여와도 절대 수사 안 받는다, 구속도 안 된다’고 말하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아, 뒤를 봐주는 뭔가가 있는갑다’ 생각은 했지요. 이씨가 여기 장생포 식당에서 두세 군데 빼고는 전부 고래고기를 납품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같이 장사하는 사람들은 고래고기를 딱 보기만 해도 압니다. 이게 혼획된 고래인가, 포획된 고래인가 보면 보이지요. 그래도 모르는 척 고기 받아서 장사하는 거지예. 이씨는 울산지역 고래고기 유통업자 중에는 제일 큰손이니까 우리도 장사할라면 눈 딱 감고 사는 겁니다.”

이씨는 고래고기 식당을 운영하면서 울산지역 전역에 고래고기도 납품하는 유통업자였다.

장생포 일대 고래고기 가게는 거의 이씨의 고기를 받아 장사를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했다.

그런 이씨가 전관 변호사를 고용했고,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고래고기를 아무런 문제없이 돌려받았다.

이것이 ‘울산 고래고기 환부사건’의 전말이다.

남은 것은 ‘왜 황 검사가 유례가 없는 일방적인 고래고기 환부조치를 했느냐’ 하는 의문에 답을 찾는 일이다.

황 검사가 기본적인 절차도 모를 정도의 초임검사도 아니었다.

울산지방경찰청은 고래고기 환부가 이뤄진 지 1년여가 지난 시점인 2017년 8월에서야 이 사실을 파악했다.

 뒤늦게 이씨가 시중에 팔아넘긴 후 냉동창고와 식당에 보관 중이던 고래고기 전량을 재압류했지만 이미 절반 이상이 팔려나간 상황이었다.

울산 불법 고래고기 유통업자의 냉동창고에서 적발된 고래고기 상자 / 울산지방경찰청 제공

울산 ‘향검’ 출신의 변호사 한씨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

장생포항에 도는 소문은 이씨의 변호사 한씨를 향해 있었다.

한 변호사는 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다.

2007년부터 부산과 대구, 울산 지역에서만 검사생활을 해온 일종의 ‘향검’이었다.

그는 2015년 서울중앙지검으로 발령받은 지 1년 만인 2016년 검사복을 벗고 울산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그는 울산지검에 근무할 당시 해양·환경을 담당했다.

울산지검에서 고래고기 불법포획 실태를 가장 잘 아는 검사인 셈이다.

역으로 말하자면 불법포획을 저지르는 범죄자들을 가장 잘 아는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 한 변호사는 변호사 개업을 한 직후인 2016~2017년 사이 울산지역에서만 117건의 사건을 수임했다.

이 중 21건이 황 검사의 방에 배당됐다.

그러나 한 변호사와 황 검사 사이의 연관성은 확인할 수 없다.

황 검사가 울산지검에서 근무를 시작할 시점에 한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학연, 지연 어떤 것도 겹치는 부분이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황 검사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황 검사의 직속상관이었던 김모 부장검사와 한 변호사 사이에 연결고리가 포착된다.

서·연·고 법대 중심의 검사세계에서 두 사람은 흔치않은 지방대학 법대 동문이라는 점이다. 출신지역도 겹친다.

울산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고래고기 환부사건’을 수사대상에 올렸다.

황 검사와 직속상관인 김 부장검사, 검찰 출신의 전관 한 변호사의 관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황 검사는 돌연 ‘예정돼 있던’ 1년짜리 국외 연수를 떠났다.

경찰은 황 검사가 출국하기 전 서면질의서를 작성해 직접 울산지검 총무과에 제출, 답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것은 “황 검사님이 질의서를 받지 않는다.

제출한 서면질의서를 가져가라”는 연락뿐이었다.

경찰은 또다시 전자메일(e- mail )로 답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

전화를 걸어봤지만 황 검사는 “울산지검에 물어봐라”는 말만 남겼다.

경찰은 황 검사의 말대로 울산지검에 공식 답변을 요구했지만 울산지검은 A4용지 2장짜리 보도자료만 배포했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총 20건의 영장 중 15건의 영장을 청구하는 등 경찰의 수사에 최대한 협조했고, 담당검사의 서면질의서 답변 여부는 검사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해 결정할 사항이지 소속 검찰청이 관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담당 검사는 이 사건을 검찰 조직이 풀 문제로 본 반면, 울산지검은 한 개인의 문제로 축소시키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 자타공인 ‘검찰 저격수’인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이 2017년 7월 28일 울산지방경찰청장에 내정됐다.

돌연 지역 토착비리사건이 ‘검·경 수사권 갈등’이라는 프레임에 갇혔다.

황 청장은 최근 단행된 정기인사에서 또다시 울산지방경찰청장에 유임됐다.

이변이 없는 한 그는 올해 말까지 울산경찰청장을 계속 맡아야 한다.

‘고래고기 환부사건’을 수사 중인 울산지역 경찰 입장에서 황운하 청장은 든든한 지원군이면서도 부담스러운 존재다.

한 경찰 관계자는 “이 사건이 마치 경찰과 검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우리로서는 마냥 반가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검경 갈등’ 프레임에 갇힌 비리 수사

경찰 수사는 현재 벽에 부딪힌 상태다.

검찰은 보도자료에 적시한대로 20건의 영장 중 15건의 영장을 청구했다.

대부분이 고래고기 불법포획 및 작업, 유통업자와 관련된 것이다.

한 변호사에 대한 강제수사는 사실상 가로막힌 상태다.

검찰은 경찰이 신청한 한 변호사에 대한 압수수색, 계좌추적, 통신영장 등 총 4건 가운데 1건을 반려했다.

계좌추적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통신영장 역시 일부 번호에 대해 제한적으로만 발부된 상태다.

울산지방경찰청은 지난 6월 27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를 하면서 한 변호사를 고래고기 유통업자에게 거짓증언을 하도록 한 혐의(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로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다음날 기각됐다.

변호사가 설령 의뢰인에게 경찰 및 검찰 수사 단계에서 거짓진술을 하도록 모의했더라도 현행법상 처벌할 수 없어 범죄가 아니라는 게 기각사유였다.

경찰은 한 변호사의 추가 범죄혐의를 발견하고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황 검사가 전례없는 고래고기 환부조치를 하는 과정에서 직속 부장검사의 지시를 받은 것인지, 독단적으로 결정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3~4차례에 걸친 서면질의서 및 전자메일, 전화통화 모두 답변이 거부된 상태이고, 울산지검 역시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생각하는 고래고기 환부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경찰이 아닌 검찰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울산지검에서는 2016년부터 알려진 것만 2건의 고래고기 환부 지휘가 있었다.

경찰은 2건 모두 검찰의 수사지휘를 거부했다.

검찰은 경찰을 배제한 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고래고기를 형사 피의자에게 돌려줬다.

이 일이 개인의 단순한 ‘실수’인지, 아니면 학연·지연이 얽힌 토착비리인지는 검찰이 제일 궁금해야 할 일이다.

황 검사는 오는 12월 국외 연수에서 돌아온다.

황 검사가 돌아오면 물어볼 수 있을까.

황 검사의 울산지검 직속 부장검사는 울산지검을 떠난 뒤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을 역임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32&aid=0002888175